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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동리목월백일장 장원 작품
문학관  2014-05-10 11:51:16
<초등 저학년  산문>  장원
유림초등 1학년 김민혁

        어머니
  우리 어머니는 안경을 썼다.  얼굴은 동그랗다.  예쁜지는 모르겠다.  우리 엄마 성격은 무섭다.  강철회초리채를 든다. 이순신장군 칼이다. 나는 그럴 때 아프고 마음도 아프다.
  엄마 목소리는 말할 때 마다 달라진다. 나는 엄마가 내 동생 윤슬이에게 말할 때 목소리가 제일 친절한 목소리인 것 같다. 나를 사랑해서 혼내신다고 말했지만 조금 이해가 안된다.  엄마가 나도 윤슬이처럼 친절하고 예쁜 목소리로 대해 주셨으면 좋겠다. 그래도 나는 엄마를 사랑한다.

















<초등 고학년 운문 >장원
구미 도산초등학교 4학년 이수현


생일날

외할머니 신발은
어둡고 낡았다.

그 옆에는
새로 산 오빠의
남색 운동화와
장미꽃 무늬 내 구두가

반짝반짝 도도한
눈으로 주글주글한
외할머니 운동화를
노려보고 있다.

5월 27일
외할머니 생신날
돼지통을 털어
할머니 새신을 사드려서

이녀석들의
버릇을 고쳐야겠다.









<초등 고학년  산문>  장원
산대초등학교 6학년 조승희

마지막 선물

제 이름은 이아림입니다. 지금부터 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시겠어요?
학교가 끝나고 하교시간이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밖으로 나오고 난 후, 제가 바로 간 곳은 병원이었습니다. 병원 문을 벌컥 열면서 “엄마!” 큰 소리로 저희 엄마를 부르자 병원관계자들이 모두 쳐다보았습니다. 이런 저의 모습을 본 저희 엄마는 “우리 림이 왔구나.”라며 저를 반겨 주셨습니다. 그나저나 왜 저희 엄마가 병원에 계시냐고요?...   저희 엄마는  암말기 판정을 받으신 환자이십니다. 그 소리를 듣고 제가 엄마에게 잘못한 것이 머릿속에 스쳐가듯이 떠올랐고 그렇기에 매일 학교 끝나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갑니다.
엄마는 제가 왜 이러는지 이유라도 아신 듯, 애써 태연하게 지내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어제 엄마가 치료를 받던 중 암이 몸 전체로 퍼지고 있고, 합병증으로 당뇨까지 생기셔서 이제 한 달 밖에 못 사신다는 판정을 얼떨결에 들어버렸습니다. 현재 저희 아빠는 해외에 계셔서 말씀드리기도 뭐하고 할머니, 큰엄마 모두 멀리 계셔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엄마는 저에게 미안한 것이 많으신지 선물이 있다고 하시더니 큰 상자를 들고 오셨습니다. 엄마께서 “절대로 우리 림이 엄마가 하늘나라로 가기 전까지 이 상자를 열어보면 안된다, 알겠지, 림아?”라고 당부 하셨습니다. 슬프게도.... 다음 날, 저희 엄마께서 쓰러지시더니 돌아가셨습니다.
모두들 슬픔에 잠겨 있는 병원에서 뛰쳐나오며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상자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편지와 가방이 있었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림아, 엄마가 이렇게 떠나가서 미안해. 이제 5학년으로 올라가지? 5학년이 된 거 축하하고, 이 가방은 엄마의...  마지막 선물이야. 친구들이랑 친하게 지내고 싸우지 말고.... 알겠지? 우리 이쁜 림아...  사랑한다. - 엄마가” 이렇게 적혀있었고 이 가방은 그래서 저에게 그렇게 소중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가방을 버리고 나면.... 추억으로 밖에 남지 안겠지만... 소중하고 소중한 저의 엄마께서 주신 가방은 평생 잊지 못 할 슬픈 선물, 그리고 다시는 느껴보지 못 할... 추억의 마지막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 오늘은 학교에서 5학년으로 올라가는 날입니다. 학교를 가며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갔다 올께!”

<중등부 운문> 장원
화랑중학교 2학년 손 윤  




내가 아장아장 걸었을 때
할머니께 가던 길

모란꽃 벌어지듯
활짝 안아주던 우리 할머니

이제는 마른 꽃 되어
아장아장 걷게 된 할머니

꽃처럼 예쁘다는 손녀가
사랑이 되어 찾아가려니

괜스레 찡해지는
할머니께 가는 길















<중등부 산문> 장원
대구 천내중학교 2학년  김민경

버스

흔히 사람들은 무언가를 놓치거나 하지 못했을 때 ‘버스는 떠났다’ 라는 말을 한다.
나는 중2 봄 무렵, 그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새 학기가 막 시작했을 때였다. 나는 하교하는 길 버스 안에서 그녀에게 화를 내는 중이었다.
“어떻게 그걸 애들한테 얘기할 수가 있어?”
“아니, 내 말부터 좀 들어봐.”
“변명같은 거 필요없어. 진짜 실망이야.”
“변명이 아니라....”
“됐어. 내일부터 너 혼자 가.”
그녀에게만 털어 놓았던 내 유일한 비밀이자 약점인 우리집 가정사를 반 아이들 모두가 알고 있다는 것에 나는 화가 나 그렇게 그녀와 멀어졌다. 초등학생일 때부터 단짝이었던 그녀였기에 나는 더 화가 났고 실망이 컸다.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그녀와 말 한마디 섞지 않고 2주를 보냈다. 전화나 문자가 와도 내가 받지 않았다.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그녀와 함께 다니지 않는 게 익숙해질 무렵 그녀는 전학을 갔다. 가는 날 아침에야 그 소식을 들었다. 인사 한마디 건낼 시간도 없이 그렇게 타야했던 버스는 떠나버렸다. 미안한 마음이 들려고 하는 것을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으로 밀어내어 버렸다. 그리고 그날, 나의 의외의 이야기를 들었다. 같은 반 친구로부터였다.
“너 요즘 왜 상희랑 서먹했어? 전학 가는데 인사도 안하고?”
“내 가정사 퍼뜨린 애가 박상희니까.”
“무슨 소리야, 너 상희랑 제일 친하잖아. 그 얘기 퍼뜨린 거 한지희야. 걔가 교무실에서 너 상담하는 거 들었대. 나도 얘기하는 거 봤고.”
누가 뒷통수를 한 대 세게 때린 느낌이었다. 순간 눈물이 날 뻔한 것을 겨우 참아내었다.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은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미안한 마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마음은 학교가 끝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같았다. 앉은 자리도 저번에 앉아서 그녀와 싸우던 그 자리였다. 아, 하필. 자꾸 눈물이 나려고 했다. 상희는 그렇게 나빴던 나를 미워하겠지. 잘못한 건 나였는데 나는 왜 이제야 그걸 알았을까.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번 역은 대곡역, 대곡역입니다.” 고개를 들었다. 매일 하교할 때 상희가 내리던 정류장. 우리집까지는 아직 두 정거장이 남았지만 나는 그 역에서 내렸다. 많이 미안했다. 내가 했던 모든 말이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돌아와 아프게 꽂혔다.
이 정류장에서 기다리면 놓쳐버린 버스가 다시 올까. 사과는커녕 인사도 하지 못하고 보내버린 그 버스가 기다리면 다시 와 줄까.
다음에 내 앞에 멈춰 설 버스에는 늦지 않게 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등부 운문> 장원
성남보평고등학교 1학년 류채은


풀잎

풀잎은 들판에 놓인 키 작은 의자,
구름이 지나다 실수로 떨어뜨린
그늘이 앉고
계절의 오랜 단층에서 발굴된 바람은
앉으려다 미끄러지고 만다

바람귀 풀린 들판이 웅웅대도
그는 잠시 몸을 움찔했을 뿐
고요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수직이 눕고
수평이 일어설 때

계절의 좌표를 미리 알아
갈 데를 정하는 그들의 습성,
바람이 끄는대로 휩쓸리는
저, 순정들

나는
고 작은 의자들 위로 털썩 앉아
초록초록 들리는
봄 향기에 귀 적신다.






<고등부 산문>  장원
풍덕고등학교 3학년 정소연

새벽

나는 48년생, 올해 예순여섯 김정순.
아직은 시린, 동이 트지 않은 푸르스름한 새벽이었다. 방을 메우는 할머니의 나직한 음성에 눈을 떴다. 어두운 방 한가운데에 오도카니 앉아 계시는 할머니는 자꾸만 당신의 나이, 이름을 되뇌고 계셨다. 할머니 안 자고 뭐해, 부스스한 머리칼을 빗어주실 뿐 할머니는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조금의 침묵 후 그저 내 눈을 멀거니 쳐다보시며 내 이름을 몇 번이고 작게 중얼거리셨다.
몇 주 전부터 할머니는 새벽에 일어나셔서 이렇듯 당신의 손녀와 당신의 이름과 나이를 외우셨다. 엄마에게 나중에서야 들은 이야기는 꽤나 아렸다. 병원에서 할머니가 치매 초기라고 했다고. 치매, 기억을 갉아먹는 무서운 병. 아직 초기라 아예 기억을 잃으신 것은 아니었지만, 매일 아침 그렇게 하루에 한번은 꼭 우리를 못 알아보시곤 했다. 심할 때는 당신까지도. 어쩜 할머니는 아침이면 흩어져버리는 기억들을 조금이라도 잡으시려 매 새벽, 이 시린 공기와 함께 우리와 당신의 이름을 외우시는지도 몰랐다. 아침이면 매정하게 흩어져버리는 할머니의 기억들이 야속하고 얄미웠다. 새벽에 제대로 잠도 들지 못하셔서 벌겋게 충혈이 된 할머니의 눈을 볼 때면 어김없이 가슴엔 저릿함이 저며왔다. 당신을 사랑하는, 한 방에서 함께 자는 손녀, 나는, 진심으로 할머니를 돕고 싶었다. 할머니가 새벽이 아닌 아침까지 곤히 주무시는 모습을 그 누구보다 보고 싶었다.
어느새 다시 잠이 들었었나 보다. 그릇들이 엎어지는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엄마의 앞치마엔 벌건 김칫국물이 튀어 있다. 싫어! 안 먹어! 할머니의 어린 투정은 언제 들어도 당황스럽기만 하다. 먹먹함이 가득 차올라 방을 나섰다. 생각들을 조금이라도 떨쳐 내려 TV를 켰다. 영화 소개하는 프로가 한창이었다.
“이 남자 주인공은 잃어가는 자신의 기억을,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 기록합니다.”
문득 중학생 때 선물 받았던 휴대용 녹음기가 떠올랐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니까 할머니도 쉽게 다루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서랍 속 녹음기를 꺼내들어 할머니 방으로 향했다.
어느새 정신을 붙드신 모양인지 할머니는 내팽겨쳐진 그릇들을 다시 상에 올려 놓고 계셨다.
나를 보신 할머니의 눈가가 촉촉해져 있었다. 가슴이 쨍, 해졌다. 요즘 단어들이 둥둥 떠다닌다, 기억들도 둥둥. 새벽에 아무리 외워봐도 나아지는 게 없구나, 고적한 할머니의 목소리에 내 손에 쥐어진 녹음기를 더욱 세게 쥐었다. 할머니, 영화에서 봤는데 자기 목소리를 녹음해서 기억을 기록한대. 할머니도 이제 새벽에 주무시고 여기 녹음해. 책에서 읽었는데, 목소리는 육체의 일부래. 자꾸 뇌가 깜빡하면 목소리가 부축해 줄 거야. 그럴 거야 할머니. 내 말에 할머니의 서글서글한 눈이 휘어진다. 고맙다, 하시며 내 어깨를 토닥이셨다. 이렇게, 할머니, 빨간 동그라미 그려져 있는 단추 누르면 돼. 큼큼, 할머니가 목소리를 가다듬으셨다. 나는 낭랑히 당신의 이름을 녹음하시는 할머니를 뒤로 하고 책을 들어 거실로 나갔다.
책장을 넘기려는데, 내 시야에 불쑥, 주름진 손과 녹음기가 들어온다. 이거 네가 갖고 있어라. 종종 내가 헤매이면 이 녹음기를 틀어줘. 할머니는 이 말만을 남기신 채 할머니 방으로 들어가셨다. 할머니의 굽은 등, 그 뒷모습이 안쓰럽다. 책에서 자꾸만 녹음기로 시선이 향했다. 할머니는 자신의 기억을 뭐라고 기록하셨을까. 나는 기어이 빨간 동그라미를 누르고야 만다.
  <트랙 1>
나는 올해 예순 다섯, 김정순. 볼에 큰 점이 있는 외아들 신형석. 삐쩍 말랐지만 일 하난 잘하는 며느리, 김미영. 사랑스러운 손녀 딸. 신, 신...., 재, 잊어 먹지 말자. 잊어....
할머니가 손녀 딸, 내 이름을 미처 기록하지 못하셨다. 나는 동그라미를 눌러 내 이름을 녹음했다. 녹음기의 스피커 부분이 맞닿은 손바닥에 할머니의 목소리가 전해질 적마다 찌릿찌릿 간질거려 움찔댔다. 할머니의 낭랑한 목소리가, 고적하지 않고 오히려 낭랑한 목소리가 아릿하다. 어느새 내 눈에 고였던 눈물이 볼가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할머니, 오늘은 곤히 늦은 아침까지 주무시길 기도했다. 주무실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몇 주, 습관처럼 새벽에 깨었다 보니 오늘도 시린 새벽 눈을 떴다. 어둑한 새벽, 할머니는 오도카니 서 계시지 않았다. 할머니의 목소리, 우리와 당신을 외우시는 목소리 또한 들리지 않았다. 내 옆에서 곤히, 새벽 안개 속 유유히, 희미하게나마 제 빛을 내는 가등 같은 미소를 띄우신 채 잠들어 계셨다. 목소리가 할머니를  꼭 붙들리라 굳게 믿으셨던 것일까. 나는 할머니 가까이 다가가 포근한 품에 안긴다. 할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내일 아침, 혹 정신을 잃으셔도 나랑 녹음기가 있잖아, 그렇게 작게 속삭이며 나와 할머니는 정말 간만에 푸르스름한, 시린 새벽, 달콤한 꿈을 꿀 수 있었다.


<일반부 운문>  장원
경주시 충효동   권명숙


계단

계단은 내게
엎드려 정성을 모으고
간절함을 담아 삶의 꽃을 피워올리신
내 어머니의 기도다

계단은 나의 곁에 머물며
내게 눈길을 주고 온정을 나누는
마음 맑은 내 이웃이다

계단은 내게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태어나지 않았지만
언젠가 태어날 나를 위해
넘어지고 깨어지면서도 이 자리를 지켜내신
내 할아버지의 땀이고 눈물이며 사랑이다

인드라의 그물망처럼 얽힌 인연으로
내 지금 여기 있으니,
나도 이제는 누군가의 계단이 되리라

해맑은 염원을 담아 정성의 꽃을 피우고
이웃의 웃음과 눈물을 함께 하며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고 이 자리를 지키는
나도 이제는 누군가의 계단이 되리라





<일반부 산문>  장원
김해시 삼계동   김정란

                         첨성대

토요일이 돌아오면 늘 챙겨보는 TV프로그램이 있다. 그 날은 중남미에 위치한 볼리비아의 핵심인 우유니 사막을 소개하고 있었다.
하얗게 펼쳐진 소금이 반사되어 하늘인지 땅인지 모를 모호한 경계가 만들어지는 특이한 곳이었다.
그 날 기자가 촬영한 것은 아주 일부분이었고, 내 눈을 단발에 사로 잡은 것은 밤에 촬영한 기이한 별무리였다. 밤 하늘에 촘촘히 박혀있는 별무리는 내 가슴속에 와르르 쏟아졌다.
그때 내가 본 것은 별무리만 본 것도 아니었다. 푸른 밤을 꽉 메우는 거대한 소용돌이였다.
기억해 보니 별에 대한 추억은 아득한 내 유년시절에도 있었다.
어린시절, 여름 밤은 시골 마당에서 자리한 평상에서 시작되었다. 머리 위에 무수히 빛나던 별들은 내 어린시절을 관통하는 성장기 속에 있었다.
별은 내게 애틋한 그리움이기도 했고 죽은 할머니가 되기도 했다가, 윤동주의 시였기도 했다가, 풀리지 않는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사의 역할이기도 했다.
그렇게 꿈을 키우는 내게 중학교 수학여행 때 만난 첨성대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신라 천문 관측의 중심지며, 계절과 태양에 관계없이 일구를 측정하여 시간을 헤아릴 수 있었다는 이야기며, 정남향 창문을 통하여 태양 광선이 바로 밑바닥에 비출 수 있는 과학적인 근거는 선조의 지혜로움을 보는 기회였다.
무엇보다 아주 오랜시절, 첨성대를 축조하기 위해 특별한 기계없이 한땀 한땀 올린 선조들의 고귀한 땀. 별을 보기 위한 염원으로 올려진 소박한 기도 속에 이루어 졌다고 생각하니 경건함마저 들었었다.
그들은 별과 달과 우주를 이루고 있는 모든 자연현상에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만든 동기가 하늘을 날고 싶은 희망에서 비롯되었듯이 첨성대도 그런 이유로 탄생되었지 않았을까 싶다.
선덕대왕의 업적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농업을 하늘같이 여겼던 우리 민족들 누구나의 가슴속에 별이 환한 등이 되어 모두의 소망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첨성대가 우리가 아는 관측기구의 역할이 아닌 별을 볼 수 있는, 그래서 척박하게 살았던 선조들의 시름을 달래주었던 공간 이었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별을 보면서 힘들었던 시간을 잊고 별이 되어 우주 여행자가 되어 떠돌던 어린시절의 기억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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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동리목월백일장 <장원>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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