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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동리목월백일장 입상작 <고등/산문>
문학관  2009-04-30 10:05:01
장원-경주여자정보고등학교 3학년 7반 정수지


약속

상수리나무 숲 아래에는 도시를 떠나지 못한 비둘기들이 모이를 찾아 서성이고 있다. 타오르는 열정으로 한 생을 마감했을 교목 근처에는 아이들이 세발자전거를 몰며 그림자를 만들고, 비둘기들은 인적이 주변에서 묻어와도 날아가지 않았다. 아니, 날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살았던 아파트 근처에는 커다란 섬유공장이 있었다. 아침마다 희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우리를 괴롭혔던 그 공장에서 더 이상 검은 연기가 나오지 않았건, 그 시끄러운 기계 소리가 멈추어 버린 건 불과 일주일 전이었다. 공장 주인 이었던 최씨가 도박으로 자금을 몽땅 날려먹고, 사채까지 쓰게 되자 10년을 지켜오던 공장의 터가 무너지는 건 너무나도 쉬운일이었다. 동네 아줌마들은 멈춰버린 공장을 안타깝게 바라보았고, 늘 시끄러워 못 살겠다던 201동 새댁도 허무하게 철거되는 공장부지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 저 공장이 저렇게 무너질지 누가 알았대요? 안됐기도 하지......" "아, 지 애비가 평생 뼈빠지게 일해서 만들어논 저 공장을 지 아들이 다 말아 먹는구만 그래......" 아줌마들의 수다가 길어질 무렵, 경비실 아저씨가 들고있던 빗자루를 던져버린 건 순식간의 일이였다. "거, 모르는 일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소! 뚫린 입이라고 막말하지 말라구요!" 경비실 아저씨는 벌개진 얼굴으로 아파트입구를 지나쳐 갔다. 엄마와 아줌마들은 의아해 하며 모두 수군수군 집으로 돌아갔고 초라하게 버려진 빗자루만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어느덧 깜깜한 밤이 되었고, 모두들 잠자리에 들어갈 무렵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뭐라고 소리치는 소리 같기도 했고, 구슬픈 노래소리 같기도 했다. 아파트 주민들은 모두 불을 켜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찾아갔다. 아파트 옥상, 소리가 나는 곳은 그곳이었다. 뭔가 하고 보았더니, 경비실 아저씨가 흐느끼고 있었다. "아, 모두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말라구......그 공장이 그냥 지은 공장인 줄 알아? 내가... 내가 지켜 주기로 했었는데......그 양반 떠나기 전, 내가 약속했다구..." 아저씨는 빈 소주병을 들고 슬프게, 흐느꼈다. 그랬다. 아저씨는 죽은 공장 주인의 친구였다. 지키지 못한 약속. 공장을 지키겠다던 그 무언의 약속이 아저씨를 지금껏 잡고 있었던 것일까?
쓸쓸히 부는 바람, 그 알싸했던 봄의 향기가 스치는 그곳. 그곳에서 아직도 지키지 못한 아저씨의 약속이 고개들고 있을까?



차상-경주여자고등학교 3학년 1반 손희애

약속

"안녕하십니까. 오늘의 첫 소식입니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 어릴 때부터 내 꿈은 언제나 아나운서 단 하나였다. 단순한 동경으로 시작한 작은 꿈이었지만 이제는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소중한 약속이 되었다.
"아빠. 나는 저 예쁜 언니처럼 훌륭한 아나운서가 될꺼야!" 그럼 아빠는 "정말? 그럼 아빠는 우리 딸이 아나운서 되면 팬 클럽 회장할께! 아빠 회장시켜줄꺼지?" 내 말이라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줄 것만 같던 아빠는 딸이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는 말에 내가 벌써부터 아나운서라도 된 듯이 나를 띄워주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는 내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우리 딸. 아빠랑 한 약속 잊지 않았지? 우리 딸 앞에 아무리 큰 산이 가로 막아도 그 꿈 포기하면 안돼. 약속지킬 수 있지?"
평소와는 다르게 진지한 아빠의 모습이 이상하긴 했지만 어리기만 하던 나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당연하지! 아빠가 팬 클럽 회장 하기로 했잖아~"
해맑게 웃는 내 모습을 보며 아빠는 마치 내가 가장 싫어하는 씁쓸한 쑥나물이라도 먹은 듯이 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 이었다. 내 기억에 남은 아빠의 웃음은. 아빠는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걸어갔고, 다시는 내 손을 잡아주지도 웃어주지도 못했다.
"아... 또 성적 떨어졌어." 시간은 너무나도 빠르게 흘러갔고 나는 어느새 점수 1,2점에 울고 웃는 19살 수험생이 되었다. 넘어가는 책장의 수가 많아 질수록, 게시판에 붙은 남은 수능 날을 뜻하는 숫자들의 수가 적어질 수록 나의 신경은 날카로워 졌고,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은 줄어들어 갔다. 그리고 자연스레 아빠와의 약속은 가슴 속 깊이, 가장 구석진 곳으로 가라앉게 되었다.
"고등학생으로써 마지막으로 내는 장래희망카드다."
언제 들어오셨는지 담임 선생님은 장래희망을 쓰는 칸이 그려진 종이를 나눠주고 계셨다. 나는 받자마자 주저없이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적었다. 그리고는 실장이 거둬 가도록 책상 귀퉁이로 밀어놓아 두었다. 잠시 후, 문학 수업이 시작되었고, '못 위의 잠'이라는 시를 배웠다. 가족들은 둥지에서 재우고, 위대롭게 잠을 자는 아빠새. 시험에 나온다는 말에 시를 감상하기는 커녕 칠판에 적힌 시에 대한 이론을 필기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갑자기 연필을 내려놓고 눈을 감고 아빠를 더올려 보라고 하셨다. 아빠라...그러고 보니 아빠라는 존재를 생각하는 자체가 너무도 낯설었다. 아빠를 보지 못하게 된 그 순간부터 나는 아빠를 잊고 살았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그러다 문득, 아빠가 사라진 건 아빠도 이 시의 아빠 새처럼 못 위의 위태로운 잠을 자다가 거센 바람에 휩쓸려서 못 밑으로 추락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서야 하나둘씩 기억이 되살아났다. '아빠와의 약속. 아나운서...' 문학시간 이후 하교시간이 될 때까지 나는 아빠를 잊고 지냈다는 죄책감과 아빠에 대한 미안함게 휩싸여서 시간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앨범을 펼쳤다. 그리고 아빠와 찍은 사진들을 뒤적였다. 한 장두장 넘어갈 때마다 아빠에 대한 그리움은 짙어졌고 급기야 눈에서는 뜨거운 것이 흘렀다. 아빠의 모습들을 떠올릴 수록 넘쳐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나는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거실로 나왔다. 하지만 복잡하게 얽혀버린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탁자 위의 리모컨을 던져버렸다. 그 때, 갑자기 TV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이건 또 왜 켜지고 난리야..."
TV를 끄려고 리모컨을 집어드려는데 뉴스 멘트가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나는 눈물을 훔치고 바닥에 쪼그려 앉아서 TV를 한참동안 바라봤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아빠와 함께 약속 했던 그 날을 떠올렸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세수를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래. 난 지켜야할 약속이 있어. 나중에 커서 아빠라 날 보면 실망하지 않도록. 그 꿈을 이뤄야 해. 약속을 지켜야해.'
책상 위의 앨범을 정리하고 서랍 속에 고이 넣어두었다. 그리고 내 마음 속에 있든 아빠에게 약속했다. 아나운서가 꼭 되겠다고. 그때까지 꼭 지켜봐 달라고.
그날 밤 꿈 속에서 나는 당당한 여성 앵커가 되어있었고, 아빠는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의 첫 소식입니다..."



차상- 경주정보고등학교 2학년 9반 이언탁

약속

한 소년이 톱니바퀴를 안고 있었다. 눈꼽만한 것도 있었고 그것보다 크지만 바람같이 가벼운 것도 있었으며 어떤 것은 벚꽃처럼 아름다우면서 소나무처럼 청담한 톱니바퀴도 있었다. 그 소년이 가지고 있는 톱니바퀴 중에 무언가 하나가 비춰졌다. 그리고 다른 톱니바퀴의 쉴틈 없는 회전 속에 소리없이 사라졌다. 잠시나마 보았던 것이지만 분명하게 본 것은 녹이 슬때로 슬었고 이끼가 더덕더덕 붙어있었다는 것이다. 처음엔 여타 톱니바퀴들처럼 빛을 비추고 완고함이 묻어 있었겠지. 그 모습이 궁금했다. 나는 생각했다. 이 손을 펼치면 닿을 수 있을까 그런데 그것은 손을 펼칠수록 신기루처럼 희미해져 갔다. 내 손이 더럽기 때문인가 아니면 한동안 찾아주지 않아서 화라도 난 것인가. 좀 더 천천히 햇살에 눈 녹듯이 조심스레 다가갔다. 갑자기 톱니바퀴가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톱니바퀴를 온몸으로 감싸안아 주었다. "가엾은 내 톱니바퀴야, 이토록 상처가 깊었는데 왜 내게 말을 안한거야." 톱니바퀴는 계속 울었다. 나는 조심스레 이끼를 떼어냈다. 떼어낼수록 나의 눈에선 눈물이 고여왔다. 무척이나 슬펐다. 무척이도 슬픈데 눈물이 봇물터지듯 나지 않는다라 그것은 거짓이었나 아니 너무도 슬퍼서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랄까 대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톱니바퀴는 수많은 이의 슬픔과 고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제 녹슨 상처를 다시 새 것처럼 갈아줄게." 그러자 톱니바퀴는 거부했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뒤늦게 알았다. 역사는 그 결과가 참혹했다 하더라도 없었던 일로 하면 안된다. 왜냐하면 그렇게되면 그것은 거짓이 된다. 그 눈물도 그 아픔도 그 기억도 그 가슴을 도려낸 현실의 차가움도 괴로워 하면서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사람이 있었기에 그것을 지워버리면 그것들은 대체 어디로가면 좋단 말인가? 그래 그것은 우리의 역사였던 것이다. 아주 먼 옛날부터하여 일제 강점기까지의 역사가 그려진 톱니바퀴였다. 일본의 무력에서도 꿋꿋히 이겨낸 톱니바퀴. 다른 톱니바퀴가 아무리 열심히 돌 수 있다고 해도 주축이 되는 이 톱니바퀴가 돌지 않으면 안된다. 남겨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이 삶을 헛되지 않게 그들의 마음을 생각하고 또 품은 채로 열심히 살아가야되는 하나의 약속이다. 이 톱니바퀴는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기억해야 될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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